문신활동가 이랑씨, 아버지 부탁으로 정신지체 소녀에 문신
오늘의 뉴스 2008. 1. 8. 14:51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 문신을 문화로 인정해 의료인이 아니라도 시술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운동을 하느라 전과와 벌금을 계속 받고 있는 `태투(Tatoo.문신) 활동가' 이랑(33)씨는 최근 색다른 고객을 만났다.
예술, 문화, 유행을 좇는 손님이 아니라 길을 잃었을 때 빨리 찾을 수 있도록 딸의 몸에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보호자의 휴대전화 번호를 새겨달라는 50대 아버지였다.
이씨는 시술 대상자인 주리빈(16)양이 아직 어리다는 점 때문에 한참을 망설였지만 "딸을 위험에 방치할 수 없다"는 아버지의 간곡한 요청에 따라 지난 5일 시술을 했다.
리빈양은 정신지체장애 2급으로 정신연령이 3세 정도밖에 되지 않아 길을 잃으면 다른 이에게 도움조차 청할 수 없다.
미성년자인 리빈양이 지문을 등록하지 않아 신원 확인이 안 되는 상황에서 수용자를 늘리는 데 혈안이 된 일부 복지시설에 강제로 끌려 갈 수도 있는 현실이기에 최후 수단으로 문신을 택했다고 아버지 주흥종(52)씨는 설명했다.
주씨는 "목걸이, 팔찌도 해 봤지만 좀처럼 믿음이 가지 않았다"며 "잘못 끌려 가 노예가 되거나 성노리개가 되는 등의 불상사를 막고 헤어지더라도 빨리 찾을 수 있도록 짜낸 고육지책"이라고 말했다.
정신지체 장애인이 몇 마디 뚜렷한 말을 하도록 도와주는 언어교정 치료 또한 40분에 3만5천∼3만8천원씩 들어 형편이 좋지 않은 가정의 아이들은 자기 신원을 표현할 수 있는 길조차 막혀 있다고 주씨는 전했다.
이랑씨는 "국가가 책임져줄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주씨의 말에 마음이 울컥해 시술료를 한 푼도 받지 못 했지만 보람은 곱절로 느꼈다"고 말했다.
이씨는 "글자와 숫자만 쓰면 그냥 종이를 붙인 것 같다"면서 리빈양의 주민등록번호 위로 날아드는 호랑나비 한 마리를 곱게 새겨넣었다.
주씨는 "그림은 생각이 없다가 권유해서 넣었는데 나중에 보니깐 마음에 들더라"며 "리빈이가 할머니가 되더라도 정신 나이가 네 살을 넘지 못할 것이지만 날개가 달린 나비처럼 예쁘게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이씨는 2006년 불법 의료행위로 단속돼 벌금 100만원을 낸 데 이어 작년에도 대학로에서 문신시술 퍼포먼스를 펼치다 경찰에 적발돼 약식기소되자 정식재판을 청구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