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관직무집행법 3조 7항'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8.05.25 "이럴 줄 알았으면 집시법 고쳐놓을 걸" 5
[기고] 경찰의 촛불문화제 금지에 대처하는 국민의 자세

황홀한 촛불의 물결, 그 행위예술
 
  5월 2일과 3일 밤, 청계천은 참 아름다웠습니다. 다리와 광장을 메워 끝없이 총총 빛나는 불빛. 행위예술이란 이런 게 아닐까요. 소리 없이 그 자리에 몇 시간이고 서 있는 것 자체가 공연이라는 행위예술가들 있잖아요. 전에는 '그게 무슨 예술' 했는데, 그 자리에서 함께 흐르다보니 이게 예술이구나 싶더라구요.
 
  집에 와서 컴퓨터를 켜면 인터넷 언론마다 멋진 야경을 독자들에게 선사하고 있었습니다. 사진기자분들, 즐겁지 않으셨어요? 그 황홀한 야경을 찍으면서, 기분 좋으셨지요? 여러분도 사진 보면서 아름답다고 느끼셨지요? 촛불 들고 오셨던 분들, 그 밤 그 장면이 너무 예뻐서 다들 휴대전화로 사진 한 번씩 찍어오셨지요? 번쩍이는 네온사인보다, 강렬한 횃불보다, 세찬 장작불보다 더 아름다운 작고 작은 여린 촛불의 행렬을.
 
  국회 문턱에도 못가 집시법 범법자가 되다
 
  3일 밤에 촛불 들고 앉아있다 보니 방송차 소리가 몇 번 났어요. 길 비켜달라는 건가 했지요. 아니,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경찰이 촛불문화제가 불법야간집회라면서 집회를 이끈 시민단체와 인터넷 카페 운영자를 불러서 조사하겠다고 했다네요. 신고는 문화제로 해놓고 연단에서 구호도 외치고 피켓도 있었으니 미신고 집회에다가 허가받지 않은 야간집회라 불법이라는 거죠. 그날도 여고생들에게 불법야간집회니까 빨리 집에 가라고 방송한 거라네요.
 
  이거 참, 갑자기 제 처지가 난감해졌습니다. 어머니가 국회의원 되었다고 초등학생 아들은 은근히 우쭐해있는데, 국회에 발도 들여놓기 전에 범법자가 되어버린 겁니다. 그것도 변호사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라는 게 있는데요, 10조에 보면 "누구든지 일출시간 전, 일몰시간 후에는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 다만, 집회의 성격상 부득이 하여 주최자가 질서유지인을 두고 미리 신고하는 경우에는 관할 경찰관서장은 질서유지를 위한 조건을 붙여 일출시간 전, 일몰시간 후에도 옥외집회를 허용할 수 있다"고 되어있어요. 20조에 보면 10조 본문에 위반한 사람은 주최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만 원 이하의 벌금, 그 정을 알면서 참가한 자는 50만 원 이하의 벌금·구류 또는 과료로 처벌하게 되어 있습니다. 변호사인 제가 법을 몰랐다는 건 누구도 안 믿어 줄 테고, 저야말로 '그 정을 알면서' 참가한 사람 아니겠습니까.
 
  친구들하고 청계천 나와서 떡볶이 먹고 옹기종기 촛불 들고 모여 앉았던 여중생들, 여고생들도 이 소식에 은근히 가슴이 덜컥 내려앉을지도 모르겠어요. 불법집회니까 해산하라는 방송을 듣고도 앉아있으면 '그 정을 알면서' 참가한 사람이거든요. 사실, 이 법은 모임을 주도한 사람만이 아니라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은 몽땅 사진 찍어서 찾아내 처벌하는 수준의 법이거든요. 이거, 2만 명, 3만 명 모두가 난감한 상황입니다.
 
  집시법, 진작 바꿔놓을 걸
 
  제가 명색이 변호사이다보니, 집시법위반 딱지 붙은 분들을 종종 만났더랬습니다. "촛불문화제 하면서 노래도 부르고 간간이 이야기도 하는데 경찰이 불법집회라고 해산 방송 세 번 하더니 집에 가지도 못하게 막고 잡아가더라"고 하시더라구요. 어김없이 벌금 50만원, 100만원씩 받고, 벌금 못 내면 하루 5만원씩 셈해서 구치소 가구요. 심지어 효순이 미선이 사건 때 촛불행사며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행사며 모두 국민들이 한창 촛불로 모일 때는 경찰이 아무 말 없다가 몇 달 지나면 불법집회라고 주모자 찾고 수배하고 구속하는 거예요. 그 때 진작 열심히 변호하고 헌법소원도 하고 국가인권위원회 진정도 해서 집시법을 바꿔놓을 걸, 왜 그냥 흘려보냈던고, 지금에서야 후회했습니다.
 
  경찰의 기준은, 제목이 문화제고 촛불을 들고 노래해도, 물러가라 사과해라 하고 피켓 들면 집회라는 거죠. 그런데 제가 촛불들 속에 앉아있어 보니까, 촛불들 자체가 예술이에요. 노래가 흐르면 촛불들이 강처럼 흐르고, 이야기가 들리면 촛불들이 들썩거리고요. 이 기준으로 촛불을 재단한다는 게 말이 안되죠. 그런데 집시법을 제 때 손보지 않고 그냥 두었더니, 경찰이
이명박 대통령 취임하자마자 집시법부터 들이대는군요.
 
 
집시법보다 높은 헌법, 집회의 자유
 
 
해진 뒤 집회는 특별히 미리 허가받은 것이 아니면 모두 해산 대상입니다. 수사기록에는 이게 꼭 들어가야합니다.
기상청 조회결과, 5월 3일 일몰시간 6시 34분. 그 뒤에 이어진 행사는 모두 불법 야간집회라는 셈법이지요.
 
  하지만 집시법보다 더 높은 법, 헌법 21조 1항에는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헌법 37조 2항,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해산시켜야 할 집회라면 국가안전이나 사회질서를 심각하게 위태롭게 해서 도저히 그냥 두어서는 안 될 정도여야 한다는 게 헌법의 집회의 자유의 뜻입니다. 고작 촛불들이 모여 사진예술창작의 소재를 만들어줄 뿐 누구도 국가 안전을 흔든 적 없고 사회질서는커녕 종로 일대의 길거리질서조차 무너뜨린 적이 없고 공공복리에 해를 주기는커녕 청계천 음식점들 장사 잘 되게 해드렸는데, 미리 허가받지 않은 야간집회여서 해산되고 처벌되어야 한다는 것인가요?
 
  아, 하나 더 짚을 것이 있습니다. 헌법 21조 2항,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되어 있네요. 야간집회는 특별한 때에 허용한다고 한 집시법을 이 조항으로 재보십시오. 허가제 맞지요? 헌법이 금지하는 허가제이지요? 집시법, 위헌입니다.
 
  촛불 찾아오실 때, 팁 몇 가지
 
  6일에 또 촛불이 모인다면서요. 생활의 지혜 몇 가지 드릴게요. 첫째, 경찰이 지하철 역 앞에 지키고 있다가 어디 가냐고 왜 가냐고 물어볼 수도 있어요. 대답 안하셔도 되거든요. 한 마디만 하세요. "경찰관직무집행법 3조 아시죠." 경찰관은 "수상한 거동 기타 주위의 사정을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어떠한 죄를 범하였거나 범하려 하고 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자 또는 이미 행하여진 범죄나 행하여지려고 하는 범죄행위에 관하여 그 사실을 안다고 인정되는 자"만 멈춰서게 해서 물어볼 수 있거든요. 거리를 걸을 뿐인 여러분의 거동 어디가 수상합니까. 싱거우면 경찰공무원증 보여달라고 하세요. 소속과 이름도 물어보시면 대화 좀 되죠. 물어보는 목적과 이유도 설명해달라고 하세요. 경찰관직무집행법 3조에 보면, 시민이 대답하기 전에 경찰관이 먼저 다 말하게 되어 있어요.
 
  둘째, 경찰관이 법 잘 지켜 다 말해주면, 한 마디만 더 하세요. "말하기 싫거든요!" 경찰관직무집행법 3조 7항에 이렇게 되어있답니다. "제1항 내지 제3항의 경우에 당해인은 형사소송에 관한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신체를 구속당하지 아니하며, 그 의사에 반하여 답변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 그리고 그냥 가시면 됩니다. 촛불의 물결을 향해.
 
  이건 좀 기억해주세요
 
  18대 국회가 시작되면 시민사회단체들과 의논해서 곧 집시법 개정안을 내야겠어요. 경찰도 개정안을 만든다고 하거든요. 지금은 말하기 싫다고 하면 끝인데, 앞으로 그렇게 말하면 처벌하도록 집시법을 고치겠대요. 복면이나 마스크 쓰기만 해도 처벌한다고도 하구요. "싫거든요!" 말할 권리도 뺏기면 그게 민주주의입니까. 여고생들 가면 쓰고 나왔던데, 이 학생들 잡혀가게 두시겠습니까. 촛불의 행위예술조차 계속 경찰이 위협하게 두시겠습니까. 기억하세요. 촛불이 지켜진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이번 기회에 집시법 제대로 바꿔두지 않으면 우리가 앞으로 줄곧 불편하다는 것을요.
   
 
  이정희/민주노동당 제18대 국회의원 당선자,변호사님의 글입니다.
(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60080505160213 )
Posted by 솔라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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